soongmac(崇脈)의 세상엿보기

♠ 산/떠 나 볼 까

여주 고달사지

soongmc 2024. 11. 15.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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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 4 호 여주 고달사지 승탑

 

 

 

2024년 10월 12일

고래산 산행 후 고달사지에 들렀다.

고달사지에서 바라본 우두산과 국사령

몇 년 전까지 살아있던 400년 느티나무가 죽어 있다.

이 곳 주변에 적당히 주차하면 되는 듯.

경기도 유형문화유산

여주 고달사지 석조

물을 담아 두거나 곡물을 씻을 때 사용하던 용기

건물 안, 절의 우물가나 취사장 가까이에 두기도하고,

중심 공간으로 진입하는 곳에 두고

부처님 앞에 나갈 때 손을 씻거나 헹궈 몸을 청결히 하는 용도로도 쓰인다.

1993년 사적으로 지정된 고달사지.

고달사는 高達院이라고도 부른다.

고달사지는 혜목산(우두산) 기슭에 있는 절터로 신라 경덕왕 23년 (764년)에 창건.

신라 말기 대표적인 선승이었던 원감국사 현욱, 진경대사 심희를 비롯하여

고려 시대의 원종대사 찬유 등 당시 불교계를 선도했던 유력한 승려들이 머물렀다.

특히 고려 광종 때에는 왕실과 중앙 정부의 후원을 받아 3대 선원 중 하나로 위상이 높았다. -안내판-

이 안내도를 잘 살폈어야 하는데,

한 바퀴 돌아 탐방을 끝낸 후 인지했다.

고달사에서 1번으로 가는 경로에는 길이 없다.

보물

여주 고달사지 석조 대좌

대좌는 부처나 보살이 앉는 자리

윗면은 불상이 놓여 있던 곳. 10세기 후반에 만들어진 것 -설명 표찰-

'보물 제 ? 호' 라는 표시에서 '보물'로만 표기하는 것으로 바뀌었는데,

어느 머리통에서 나온 발상인지~

그거 몇 자 줄인다고 살림 나아지셨습니까?

우리네 같은 사람들은 구분하기 참 불편해졌다.

보물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975년(광종28)에 만들어 짐

원종대사의 찬유를 기리기 위한 것.

신라 경문왕 9년(869년)~고려광종9년(958년)

90세에 입적하자 광종은 그의 시호를 '원종'이라 하고, 탑 이름을 '혜진'이라 하였다.

1915년 몸이 넘어지면서 여덟 조각으로 깨어지자

국립박물관에 보관해 오다가 지금은 여주박물관으로 옮겨 전시하고 있다.

비 몸은 2014년 복제 -설명 표찰-

고달사지 전경

고달사

왼편 길을 따라 호기롭게 국보를 만나러 간다.

개천 옆으로 '다향루' 정자가 보이고~

고래산 5.2km 이정표가 숲을 가리키고 있고,

오른쪽 삼성각 방향으로 올라간다.

삼성각 주위에서 길이 끝나고, 별도의 표지나 이정표도 없다.

삼성각 뒷편 공터에 쑥부쟁이가 꽃밭을 이루고~

내 앞에서 계속 앞서 가던 두 방문객이,

탑을 찾지 못했다고 하며 내려가고 있다.

대충 짐작으로 숲을 향해 들어가고~

계곡 건너 뭔가가 희미하게 보이고,

길 없는 계곡으로 내려간다.

낑낑 ~

비탈을 30여m 미터 올라가니 탑신이 보인다.

국보

(뒤에 적혀있던 '제 4 호' 글씨는 테이프로 적당히 붙여놓았다.)

여주 고달사지 승탑

빗돌에 있는 '第 四 號'

이것도 테이프로 붙이지 그러셨어요?

여기도 이정표가 있다. 고래산 4.5km

돌계단을 내려와 뒤돌아 본 승탑 방향

보물

여주 고달사지 원종대사탑

넓은 절터 안에 많은 석조 유물이 있는 가운데

원종대사탑비와 함께 거의 완전한 형태로 보존되어 있다.

삼단으로 이루어진 받침돌 위에 탑 몸돌과 지붕돌을 올린 형태로,

전체적으로 팔각 평면 형태를 기본으로 하지만 받침돌의 구조가 특이하다.

세워진 연대는 비문에 따르면 977년 (경종 2년))으로 추정. -설명 표찰-

보물 제 7 호

고달사원종대사혜진탑

고달사지로 내려가며 뒤돌아 본 보물 제 7 호 구역

애초에 이곳으로 올라갔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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