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12.02.27 15:36
존 허. 스포츠조선 DB

"믿기지 않는다. 도대체 내가 무슨 말을 해야할 지 모르겠다."
우연히 접한 골프, 허나 곧 가난한 소년에겐 사치가 돼 버린 골프, 그래도 떨치지 못했던 골퍼의 꿈.
존 허의 '아메리칸 드림'은 단칸방, 연습볼, 지하철 캐디백이란 가난과의 한판 승부를 이겨낸 결과다. 젊은 나이에 세계 최고무대 정상에 우뚝 선 그는 엄친아도, 타고난 골프 천재도 아니었다.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 시민권자인 존 허는 2세 때 한국으로 와 서울 중평초등학교를 다니다 12세에 다시 미국 시카고로 갔다. 그때 본격적으로 골프를 시작했다. 하지만 곧 아버지(허옥식씨)의 사업실패로 가족은 위기에 빠졌다. 좁디좁은 단칸방에서 네 식구가 옹기종기 모여 살았다. 부모님과 형(허민수씨)까지 나서 막노동에 가까운 일을 하면서 골프를 무척이나 좋아하던 존 허의 뒷바라지를 했지만 비용은 만만찮았다. 존 허는 꿈많은 10대때 연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스윙을 익혔다. 볼을 줍는 대신 연습볼을 제공받았다. 애시당초 미국 무대 도전은 여의치 않았고, 한국으로 눈을 돌렸지만 이마저도 쉽지 않았다.
서울 강북에 살때 분당 연습장을 가기위해 캐디백을 메고 지하철을 탔다.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할 겨를조차 없었다. 무작정 꿈을 향해 달리던 그에게 2009년 신한동해오픈 우승은 큰 자신감을 불어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