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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과 중국 일본 베트남 등 한자문화권에서 시공간 개념을 지배해왔던 것은 60갑자(甲子)를 기반으로 한 역법 체계다. 60갑자는 갑을병정(甲乙丙丁)으로 시작하는 십간(十干)과 자축인묘(子丑寅卯)로 시작하는 십이지(十二支)가 서로 짝을 이뤄 만들어진 60개의 조합이다. 일본 학자 미즈가미는 이를 주기적(週期的) 부호문자로 불렀다. 이 부호는 음양관과 오행사상에 근거를 두고 있다.
과거엔 부호들의 상징체계에 의해 연월일시가 정해지고 우주의 원리까지 밝힐 수 있다고 믿었다. 심지어 인간의 생로병사와 길흉화복도 이런 부호들의 관계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근대화 이전 한자문화권 국가들은 대부분 음양오행과 60갑자 사상에 뿌리를 두고 나라를 운영하고 사회의 틀을 만들었다. 근래에는 이 같은 믿음이 많이 사라졌지만 사회 일부에는 아직 잔존해 있다.
우리나라만 해도 2007년 정해(丁亥)년을 황금돼지해, 2010년 경인(庚寅)년을 백호의 해, 그리고 올해 임진(壬辰)년을 흑룡의 해로 부르며 훌륭한 자식을 낳을 수 있다는 풍조가 퍼졌다. 정해년에는 전년도보다 출산율이 10%나 상승했다는 통계가 나오기도 했다. 우연인지 몰라도 출산율은 그 후 2년 동안 뚝 떨어졌다가 2010년에 다시 올라갔다.
내년 계사년(癸巳年)은 뱀의 해로 60갑자 중 30번째해에 해당한다. 1953년 이후 60년 만에 돌아오는 계사년이다. 계사는 검은뱀, 물뱀을 상징한다고 한다. 뱀은 생김새가 징그러워 싫어하는 이들이 많지만 은혜를 갚는 영물이라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음양오행에서 계(癸)가 의미하는 것은 검은색과 물이고 사(巳)는 불의 속성을 가진 것으로 인식된다. 사람에 따라 이를 해석하는 것은 물론 엇갈린다. 물과 불이 만나 제자리를 찾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고 물 불이 서로 갈등을 빚을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역사에서 고려 성종 때 거란의 침입을 계사년인 993년에 막아냈고 1950년에 일어난 6·25 전쟁도 계사년인 1953년 휴전이 성사되었다. 하지만 1592년 발발한 임진왜란은 다음해인 계사년에 더욱 악화되었으며 고려 명종 때인 1173년에는 무신정권에 항거하는 계사의 난이 일어나기도 했다.
결국 내년 운세를 점치는 것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식이다. 요즘 같은 시대에 부호를 해석해 좋고 나쁨을 따지고, 미래를 예측한다는 것 자체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오춘호 논설위원 ohcho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