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비로봉의 용왕탑과 산신탑
2025년 11월 5일
'가을 단풍이 아름다운 치악산은 붉을 적(赤)자의 적악산이라 불렸는데,
옛날 경북 의성에 사는 한 나그네가 이곳을 지나다 꿩을 잡아 먹으려는 구렁이를 발견하고
꿩을 구해주었고, 이 꿩도 구렁이가 나그네를 해치려는 것을 막아 은혜를 갚았다고 한다.
(나그네를 휘감은 구렁이는 절 뒤 종루에 종이 세번 울리면 살려주겠다고 하였는데,
꿩이 종을 세 번 쳐 종을 울리고 죽었다)
이런 꿩의 보은 설화로 꿩 치(雉)_자의 치악산으로 불리게 되었다
지금도 남대봉 상원사에는 은헤를 갚은 보은의 종이 복원되어 있다.

남대봉 상원사 종각

횡성군 강림면 태종로 부곡6길
부곡탐방지원센터 주차장.
뾰족한 선바위봉과 그 뒤로 영월 매봉

치악산 부곡탐방지원센터.

개울을 건너며 왕의숲으로 들어선다.
비로봉까지는 4.5km

바닥을 정리하여 맨발걷기 좋은 길로 만들어 놓았다.

여섯 차례 강무가 치뤄진 태종 이방원의 숲길 안내판.

지원센터에서 500m를 이동하여 곧은재 큰무레골이 갈리는 쉼터 도착.
상원사 9.3km로 표시되는 남대봉 이정표가 눈길을 끄는데~
곧은재(고둔치)에서 향로봉을 거쳐 남대봉 상원사 이렇게 진행해야 하는 코스

계단 통로로 시작되는 비로봉 방향 오름길의 80개 침목

계곡을 끼고 오르는 길.
단풍은 애당초 말라버린 상태로 시작했기에 기대하지도 않지만,
혹시 싱싱한 개체가 있을까봐 이리저리 염탐하며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부곡계곡의 지계곡이지만 제법 수량이 풍부하여,
흐르는 물소리가 경괘한 행진곡이 되어준다.

지계곡 합수점 위쪽에 처음이자 마지막 다리를 건너고,

그래도 단풍!
붉게 타오르는 싱싱한 단풍나무를 발견한 내 심장은


치악 09-01 해발 699m
부곡탐방지원센터 1km.
치악산 09 천사전망대 탐방로.
국립공원 탐방로이니 길 잃고 알바할 일은 없겠지만,
고도와 거리표시는 불량 체력자에게는 큰 힘이 되시겠다.

너도 보탬이 되라고 응원하냐?
아무리 독이 없다해도, 넌 반갑지 않다.
절기 상 상강이 지났는데, 서리 먹으러 나왔다가 집을 잃었나?
움직일 생각을 안하니, 내가 피하는 수밖에 ! 허허~

쭉쭉 뻗은 낙엽송 사이
오솔길 오름 뒤로 하늘금이 보이고,

역쉬 ! 국립공원다운 깔끔한 시설.
첫번째 덱계단이다.

자연 친화적 쉼터 의자.
계곡 잣나무숲에서 첫번째 쉼터를 만나고,
이곳이 두번째 쉼터.
허접한 체력으로 여길 그냥 통과하면 틀림없이 후회할 것 같기에
여유있게 이온 음료 한 모금 들이키는 센스.

완만한 마루금 능선으로 이어지다가,
다시 덱계단과 함께 꺽여지는 능선 하늘금.
첫 계단과 달리 계단수가 백개가 훨씬 넘지만,
그래봐야 이백개도 한참 못 미치는데...

갑갑했던 능선길이 천사전망대로 올라서니, 전혀 다른 세상을 보여준다.
가야할 비로봉이 우뚝하고,
곧은재로 이어지는 주능선이 쫘악~
도상에 1003.3m로 표시되고 잠시 뒤 1002m 이정표도 나타나니
여기에 전망대 쉼터를 만들어 천사봉으로 명명했구나.

우뚝 솟은 비로봉의 모습은 어느 방향에서든 그 모습이 확실히 구별되지만
이곳에서 바라보는 비로봉의 모습은 어느 유명산보다 더 고고해 보인다.
돌탑이 더욱 돋보이는 이유일 수도 있겠다.

천사전망대 근처 09-03 이정목 다음의
해발 1017m 09-04 이정목이다
천사전망대부터 이어지는 능선은 둘레길처럼 완만하게 이어진다.

고산지대에 흔하게 볼 수 있는 산죽 군락지가
천사봉능선에 잠시 펼쳐지고,

성질 급한 겨우살이가 벌써 자리를 틀었다.

오르내림이 지속되었지만,
치악 09-05 이정표 지점의 고도 역시 도토리 키재기 1023m.

억새라 불러주기에는 뭔가 부족한 풀섶 아래,
헬리포트임을 표시하는 블록들이 보인다.

다시 짧은 비탈길이 시작되고,
침목계단으로 연결된다.

해발 1047m 치악 09-06 이정표와,
세번째 목봉의자 쉼터.
국립공원 답게, 원칙이 잘 지켜지고 있다.
목봉 의자는 다섯개 !
"별이 다섯개"에서 착안했나?
편안한 휴식을 취하라는 크나큰 배려 감솨함돠~

오름길에 만나는 선바위?
소원바위인지,,,
저마다의 작은 소망이 여기저기 올려져 있다.

선바위를 지나 세번째 데크계단으로 이어지는데,
여기는 고무 매트가 깔려있다.
여름철 고무 냄새 유발과 자연경관 훼손 등의 민원이 제기되면서
2017년부터는 신규설치가 중단되었다가
2024년 6월부터 고무 매트 철거 작업이 시작되어,
지나온 두곳은 이미 철거하여 한곳에 모아두었지만
여기는 아직 그대로다.
얼마 전 북한산 형제봉에서
제거된 고무매트가 한곳에 쌓여있었던 모습이 몹시 궁금했었는데~

치악 09-07 해발 1152m.
비로봉까지는 600m 거리.

두번째 묵은 헬리포트. 치악 09-08 해발 1193m

비로봉 데크전망대가 뚜렷하고,
돌탑 3기의 모습도 드러났다.

헬리포트 옆의 쉼터
숨고르기 후 막바지 된비알로 도전하라는 의미.

오늘 산길에서 처음 마주치는 돌계단

이어지는 데크계단.
백개가 조금 넘는...
네군데 데크계단이 모두 적당한 듯 하다.
기억을 되살리면,
제약산 사자평의 1273 연속 계단, 설악산 토왕성폭포 전망대 900개가 넘는 연속 계단.
여기는 침목계단 등등 다 합쳐도 그에 못 미치고,
더구나 뿔뿔이 흩어져 있잖아 ㅋㅋ

마지막 데크계단을 올라오면,
칠성탑으로 내려가는 곳

그리고,
치악산 정상의 시그니처 산신탑과 용왕탑.

중앙에 헬리포트와 쥐넘이재
오른쪽으로 삼봉과 투구봉.

쥐넘이재 너머로 보이는 원주시가지는 그저 암흑의 도시.

올라온 천사봉 능선을 중심으로
뒤편에 선바위봉과 매봉, 오른편으로 남대봉과 시명봉

천지봉에서 흘러내린 능선 뒤로 천불데기산과 구룡산

올라온 능선을 짚어보니
천사봉 전후의 산길이 뚜렷하다.

부곡리 뒤편의 선바위봉과 영월의 매봉

천사봉 능선 오른쪽으로
곧은재와 향로봉,
남대봉과 시명봉이 희미하게 자리하고,
멀리 백운산은 그저 존재의 의미로만...

품앗이로 정상 인증
평일이지만,
인증샷 대기할 정도로 붐빈다.
여기가 어디인가 !
24국립공원 중 16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며, 100대 명산으로 지정되고
이인직의 소설에도 등장한 치악산 아니던가 !!!
( '이인직:친일 반민족행위자'이지만,
소싯적에 시험 대비 외워야 했다. 이인직의 혈의누,,,)

천지봉과 그 뒤로 매화산
먼 뒤로 굵직한 산들의 이름이 열거되야 하지만,,,
오늘 미세먼지 알차다.

여기도 목봉의자의 법칙은 5로 적용된다.
홀로 산객(남)이 자리하고 있었지만,
슬그머니 두 개 점령했다.
벌써 따끈한 양지쪽이 그리운 계절이 왔다.
나도 모르는 은근슬쩍의 산행 습관.
먹는 건 최대한 외면 !
아침 식사는 오랜 습관으로 금식,
점심 식사는 오랜 습관으로 최대한 늦게,
저녁 식사는 가능한 '장수'와 함께.
그렇다 보니 으례히 하산 후 괴나리 봇짐은,
오를 때와 변한 것이 물, 이온음료 정도.
"왜 무겁게 갖고 댕겨 ~~~~~~~~~"
울 집 대장 하시는 말이다
그러나,
이곳이 어디인가
'치가 떨리고 악에 받치는 산' 아니던가
내려가다 쓰러질 수 있으니 영양 보충해야했다.
곶감 한 개, 사과 한 개, 맥스봉 한 개,
푸짐하게 한상 차려 묵었다.

10여년 전에 몇 번 이용했던 기억이 가물가물한 황골 방향 계단.

듣기만 해도 으시시 했던 '사다리병창' 가는 길.

이 돌탑들이 없는 치악산 비로봉은
뭔가 허전할 것 같은 느낌이다.
한 개인이 꿈과 연관되어 쌓은 탑들이지만,
1994년 이후 세차례에 걸쳐 벼락을 맞아 무너진 것을
치악산 국립공원사무소에서 복원하였다는데,
칠성탑 옆에 피뢰침도 세워졌다.

모처럼 정상에서 배불리 처묵했으니
느긋하게 내려가자.

천사봉 능선에서 다시 눈에 띄는 겨우살이.
한두개가 아니구먼...

낙엽송 단풍도 메타세콰이어 못지 않게 예쁜데,
금년 단풍은 망해쓰~

썩어도 준치.
그래도 단풍.
단풍이 고와서 적악산이라 했다는데,,,
어쩌겠누, 예쁘게 봐줘야지.
램블러앱에서 '단풍산행' 뱃지 준다는 건 특급비밀 !

목봉 제1쉼터.
그래도 쉼터인데, 빼먹으면 섭할까봐 담아줬다.

부곡계곡 맨발걷기길로 내려선다.

여기까지 왔는데,
귀한 역사공부 안할 수가 없지.
치악산 강림(講林), 조선시대 상설 강무장(講武場)
조선시대 횡성 강림 지역은 국왕이 참여한 강무행사가 열린 곳으로
강원 원주, 평창, 강릉 등지와 함께 상설 강무장이 설치되어 있었다.
태종은 상왕이 되던 이듬해인 세종1년(1419년), 세종3년에도
세종과 함께 치악산 일대에서 대규모 강무를 가졌다.
강무는 왕이 직접 참가하는 군사훈련이자 사냥행사를 말하는데
많게는 5천 명 이상의 군사와 만여 필의 군마가 동원되었다.
강무가 시행되는 시기에는 강무장으로 지정된 곳은 수렵이나
개간 등의 경제 활동이 일체 금지되어 백성의 원성을 사기도 하였다.
당시, 국왕이 함께하는 강무는
백성들에게는 전시 효과가 있었다고 한다.
